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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민화(中民化)시대를 향하여

일본의 지식인과 경제인, 정치가들은 요즘 전후 냉전시대가 끝나고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군국주의 및 패권국가와 같은 발상을 배격한다고 하면서도, 엄청난 경제력에 기초한 일본의 역할증대를 겨냥한 새로운 국제질서-‘경단련(경제단체연합회)’의 표현을 빌리자면 공생관계-를 모색하는 데 매우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중민화(中民化)시대를 향하여



1년만에 잠시 서울을 다녀왔다. 돌아오는 길에 도쿄와 오사카에도 들렀다. 일본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주장이 근래 부쩍 고개를 들고 있다. 말인즉 옳은 말이다. 일본이 우리보다 근대화에서 훨씬 앞서고 있는 것도 분명한 만큼, 일본으로부터 배울 것은 빨리 배우자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이것을 구태여 색안경을 쓰고 보는 시대는 지났다고 본다.
일본의 지식인과 경제인, 정치가들은 요즘 전후 냉전시대가 끝나고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군국주의 및 패권국가와 같은 발상을 배격한다고 하면서도, 엄청난 경제력에 기초한 일본의 역할증대를 겨냥한 새로운 국제질서-‘경단련(경제단체연합회)’의 표현을 빌리자면 공생관계-를 모색하는 데 매우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러니 아직 모호하기는 하지만 우리가 21세기를 향한 일본의 구상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뉴욕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의 심정은 착잡했다. 일본과의 발전 격차가 벌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일본을 보는 우리의 시각 안에 균열과 단절이 커지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국민의 반일감정에도 문제가 있지만 우리나라 지도층의 의식과 행동에 일기 시작한 사대주의 또는 비관주의가 예사로운 일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단적으로 말해, 우리가 일본과 경쟁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며 그 동안 미국을 ‘큰 형’으로 모시고 살았듯이 이제는 일본을 모시고 그 밑에서 공생 협력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기업인과 정치가는 물론이고 일본을 잘 아는 지식인, 언론인 사이에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추세와 국민 대중의 정서가 어떻게 화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민 대중의 반일감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실제로는 일본을 ‘큰 형’으로 모시려는 지도층의 이중 게임이 국민의식에 어떤 분열증을 심화시킬 것인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동경에서 만난 조일신문 오쿠리 정치부장과의 대담은 상당히 암시적이었다. 금년 광복절을 전후하여 서울대에서 열린 범민족대회 때 전대협 소속 2만여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일본의 신식민주의를 규탄하는 플래카드를 전면에 내걸었다는 나의 관찰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본에서도 60년대에는 일본의 대미 종속을 규탄하는 소리가 높았습니다. 우리도 그 세대에 속하지요. 그러나 지금 보면 일본은 독자적인 길로 선진발전을 이룩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나는 한국과 중국도 일본과는 다른 방식으로 선진발전을 이룩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가 되면 세계에서 동아시아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질 겁니다.”
2차 대전의 패전국인 일본이 어떻게 반세기만에 미국을 능가하는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가는 오늘날 비교적 상세하게 분석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과연 어떤 조건과 가능성이 있는가. 일본을 이해하고 일본으로부터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본에는 없는 우리의 고유한 잠재력을 살려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따라서 일본에 대해서라면 지고 싶어하지 않는 우리 국민의 기대와 욕구를 발전의 에너지로 삼는 특출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세 가지 테마를 제시하고 싶다. 이 이야기들은 모두 우리에게 구조개혁이 필요하며 국민의 마음을 일신시켜 결합시키는 일대 전기가 필요하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는 명실상부한 정치발전이 이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에서 누가 이기든 간에 일본 자민당식 집권체제를 꿈꾸는 것은 금물이다. 일본인은 자민당 지배하의 경제성장에 만족하면서 세계를 향한 정치적․도덕적 비전을 상실해버렸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 정권교체, 정부교체를 이룩하여 보다 튼튼한 민주제도를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 한치의 착오도 있어서는 안 되겠다.
둘째는 냉전유산을 과감히 털어버리고 민족문제를 획기적으로 새롭게 조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종래의 좌우대항축에 더 이상 집착하는 것은 우리의 발에 스스로 족쇄를 채우는 것과 같다. 새로운 제도와 이념의 좌표가 요구된다. 분단국인 우리로서는 민족문제만큼 중요한 문제가 없다고 말해도 좋다. 여기서 새로운 활로가 뚫릴 때 비로소 우리는 일본과 대등한 발전을 이룩할 수 있고 문화적․정서적 긍지도 복원시킬 수 있다.
셋째는 중민화(中民化)시대를 활짝 열어야 겠다는 것이다. 부정부패에 물들지 않고 상류층의 기득권에 야합하지 않은 채 외롭지만 양심과 지조를 갖고 전문지식으로 사회 각 분야의 중간허리를 지켜주고 있는 젊고 근대적인 집단, 이들 중민이 자기 목소리를 내고 리더십을 발휘하는 시대가 빨리 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본에 없는 이러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 힘이 조직화될 때 우리 사회는 훨씬 건강해질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지도층이 훨씬 더 젊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어느 의미에서 원로사회라 할 수 있다. 위로부터의 권위가 강력하고 미세한 통제력이 사회 곳곳에 잘 파고든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다르다. 우리는 보다 개방적인 미래를 원하며 아래로부터의 활력이 사회발전에 보다 중요한 요소인 것으로 보인다. 사회 각 제도와 조직에 진입해 있는 중민의 역할이 신장되는 새로운 시대를 앞당겨야 하겠다.

                                 

-한국일보(1992년 9월 3일, 한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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