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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혁주체, 민중(民衆)이냐 중산층(中産層)이냐

오늘의 변혁주체,
민중(民衆)이냐 중산층(中産層)이냐

다시 민중(民衆)을 논의하는 이유

우리 사회에서 ‘민중’은 과연 누구인가, 또 누가 ‘중산층’인가? 민중과 중산층은 어떤 사회적 성격과 이념적 지향을 가지고 있는가? 또 이들은 서로 대립적인 것인가 아니면 양립 가능한 것인가? 이런 질문들에 대해 아직 학문적 합의가 이루어진 상태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이런 문제들을 지금까지 주로 그랬던 것처럼 논증 이전의 실천적 입장에 의해, 단정하기보다는 경험적 자료를 중시하는 자세로 다루어 볼까 한다.
논의의 출발점에서 우선 우리가 처함 역사적 상황을 간략히 조명함으로써 우리가 왜 민중논의를 다시 해야 하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잘 알다시피 우리의 현실은 한마디로 전환기로 특징된다. 전환기란 민중억압과 배제의 관료적 권위주의 체제가 서서히 무너지면서 자유화와 민주화의 실험들이 태동하는 역사적 상황을 가리킨다. 그러나 구체제가 무너진다고 하지만 그 구체제의 내용은 무엇이며 이것이 무너졌다고 말할 수 있는 조건은 어떤 것인가, 또 새로운 체제가 등장한다고 할 때 그 새로운 체제의 골격은 어떤 것이며 이것이 정착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 조건들은 또한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에 대해 깨끗하게 답하기는 어렵다. 관점에 따라 ‘새시대’의 의미와 내용이 다를 수 있으며, 이에 도달하는 방법론도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전환기의 유동성과 불확실성은 높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유사한 발전수준에 있는 다른 나라들의 경험을 살펴볼 때, 인간의 기본권을 억압하고 정치적 참여를 제한시켜온 권위주의의 제도적 유산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사회이행의 출발점이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나라도 이제 16년 만에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뽑았고, 그 대통령이 권위주의를 청산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상, 전환기의 문지방을 순조롭게 넘어섰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새 시대’가 이미 도래한 것은 결코 아니다. 또 앞으로 몇 년 안에 이것이 이루어지리라는 환상적인 기대를 가져서도 안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관료적 권위주의의 등장과 붕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대표적인 ‘연속모델’에 속하며, 여러 가지 정황은 앞으로 전환의 속도가 매우 완만하리라는 점을 예고해 주고 있다.
그럼에도 1985년 2월 총선을 출발점으로 하여 1987년의 국민적 민주화운동, 이에 대한 체제유지적 대응으로서의 6·29선언, 12월의 대통령 선거, 그 뒤의 개혁을 향한 정치적 제스처 등을 통해 사회이행을 향한 제1보가 우여곡절 끝에 이루어졌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물론 국민대중이 원했던 최선책은 이와 달랐다는 점에서 이 가능성을 유산시킨 책임은 분명히 따져야 되겠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변동하고 있는 현실을 간단히 외면하거나 부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 새로운 집권세력이 인수한 체제가 워낙 개혁의 소지를 많이 안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이 시도할 수 있는 개혁의 지평은 상대적으로 넓다고 볼 수도 있다. 즉 과거의 집권세력과는 달리 어느 정도 효율적으로 사회집단들의 의사를 청취하면서 탄력 있게 ‘기술합리성’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만일 집권세력이 이렇게 기능적으로 변신해간다면 이에 도전하는 정당이나 사회운동은 더욱 탄력 있게 체질개선을 해갈 필요성이 고조된다. 또 사실 확고한 사회적 기반 위에서 사회집단들과의 유기적 연대를 성취하는 정당이나 사회운동이 있어야만 비로소 그 힘에 의해 여론이 활성화될 수 있고 집권세력에게도 개혁의 압력을 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의 전망은 이 점에서 그리 밝다고 할 수 없다.
어쩌면 비관주의가 다시 풍미할 가능성마저 엿보이는 것이 우리의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획기적인 새로운 출발을 위해 모든 고정관념을 떠나 변화하는 현실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집권세력이 제시하는 개혁 프로그램에 안주하거나 상징조작에 매몰되지 않고, 보다 본질적인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간단히 외면하거나 부정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모순과 한계를 직시하면서 확고한 책임의식으로 미래의 가능성을 키워가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회변혁의 좌표가 추진세력의 문제는 이런 안목에서 배우 중요한 문제이다. 변혁의 좌표가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새 시대의 골격이라면, 추진세력이란 변혁지향적 운동의 사회적 기반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집권세력은 기본적으로 위로부터의 개혁을 표방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상황에서 보다 본질적인 아래로부터의 개혁을 추진하는 정당이나 사회운동은 과연 어떤 개혁목표와 전략을 가져야 하며, 또 어떤 집단을 개혁의 추진세력으로 삼아 이들과 연대해가야 할 것인가의 중대한 질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사회변혁의 좌표에 관해서는 길게 논하지 않겠다. 오직 선언적인 의미에서 정치적 민주화의 가치를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지만, 이것이 개혁의 종착역이라기보다는 시발역에 가까운 것으로 보면서 이로부터 출발하여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는 구조개혁과 더불어 민족의 이질화를 극복하는 민족화의 과제가 새 시대의 기본골격으로 매우 중요하다는 점만을 강조하고자 한다.
그 대신 이하에서는 후자의 문제, 즉 변혁주체에 관해 살펴보고자 한다. 즉 우리의 현실에서 밑으로부터의 사회변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세력을 중심으로 모으는 탄력 있는 이론과 실천이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자료 분석을 통해 민중과 중산층의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이 논의는 하나의 시론에 불과한 것이지만 사회변혁에 관심 있는 독자들이 자기정체성을 발전시켜가고 보다 넓은 사회적 연대감을 증진시키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더 없는 보람으로 여기겠다.

기존 논의의 세 가지 문제점

사회변혁의 주체를 탐색하는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발견된 세 가지 문제점을 간략히 지적해두는 것이 앞으로의 논의를 위해 필요할 것 같다.
첫 번째 문제점은 민중과 중산층을 다루는 논의에서 마치 이들이 서로 배타적인 관계에 있는 것처럼 간주하는 경향이 상당히 있었다는 것이다. 민중을 변혁주체로 본 사람은 중산층을 보수적인 것으로 보아 그 의미를 무시하거나 주변적인 것으로 처리하는 경향이 강한 데 반해, 중산층을 변혁주체로 설정한 사람은 민중의 의미를 그야말로 폭력혁명적인 것으로 과장해석하는 경향이 강했던 것이다. 또 민중에 속한 사람은 중산층일 수 없고 반대로 중산층에 속하는 사람은 민중이기 어렵다는 통념도 강했던 것처럼 보인다.
필자는 이러한 시각 또는 통념이 이론적으로 오류일 뿐 아니라 실천적으로도 많은 부작용을 가져온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민중과 중산층의 개념은 그 개념화의 수준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실에서 보자면 민중이란 그야말로 국민 대중을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주요 의사결정과정으로부터 철저히 배제시키면서 일부 상류층, 특히 군부 행정부 독점재벌의 상호작용에 의해 모든 문제를 위로부터 결정하는 체제 안에서 태동한 개념으로서, 누적되는 체제모순의 극복을 지향하는 운동의 주체이자 民 나라의 주인이라는 의식과 이에 상응한 실천능력으로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가는 참여의 주체로서 등장한 개념이다. 따라서 민중은 본질적으로 폐쇄적이라기보다는 포용적이며, 현실적으로는 ‘권력연합’과 구별되는 다양한 세력들의 연합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개념이다.
그러나 중산층은 이와 다른 기중에 의해 설정되는 개념으로서 이들이 민중연합에 참여할 수 있는지, 또 어떤 부류가 그럴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역사적·경험적으로 밝혀야 할 것인지 개념적으로 단정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고 본다.
두 번째 문제점으로는 이런 혼란의 근원으로서 민중의 개념이 잘못 구성되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요컨대 민중의 주축을 생산노동자, 도시빈민, 농민으로 보는 종래의 견해는 자본주의적 발전과정에서 발생하는 박탈의 대상을 민중의 개념으로 잡은 것으로서, 이것은 민중의 개념을 지나치게 좁고 경직되게 만들 뿐 아니라 사실상 민중=하류층이라는 의문스러운 가정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민중개념에 원래 내포된 풍부하고 역동적인 의미를 변질시키는 부작용을 가져온다.
또 우리의 현실에서 중산층은 이미 무시할 수 없는 규모로 존재할 뿐 아니라 그 규모가 앞으로 계속 증가하리라 전망해볼 때 그 중산층과 배타적인 것으로 민중 개념을 설정하는 것은 스스로 민중운동의 가능성과 지평은 편협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 ‘새 시대’에 걸 맞는 새로운 사회통합의 모델을 제시하기는커녕 오히려 이에 해가 되는 긴장과 오해를 필요 이상으로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세 번째로는 민중개념에도 검토를 요하는 문제점이 있지만 중산층의 양면성을 명확히 밝히는 작업도 매우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민중을 변혁주체로 상정할 때 중산층의 위상을 제대로 조명하려면 중산층을 무조건 보수적인 것으로 단정하는 통념도 잘못된 것이지만, 그렇다고 중산층의 보수성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도 잘못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산층 가운데서 혹시 민중적인 성격을 강하게 갖는 집단이 있는지 또는 어떤 부류는 그렇지 않는지를 경험적으로 명확히 밝히는 것이 생산적인 도움이 될 것처럼 보인다.

계급-중산층-민중의 개념적 관계

이 글은 위에 지적된 세 가지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하여 나름대로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한 것이다.
우선 개념적 논리적 수준에서 부자면 민중개념의 기조를 경제적 박탈의 대상으로 고정시킬 것이 아니라 반대로 포괄적인 변혁주체로 상정하는 것이 해결의 출발점이 된다.
좀 더 이론적 용어로 꾸미자면, 민중개념은 우리 사회에 작용하는 다양한 모순의 축들-예컨대 권위주의로 드러나는 정치적 모순, ‘종속 발전’으로 특정되는 경제적 또는 계급적 모순, 분단으로 압축되는 민족모순-또는 관점에 따라서는 성(性), 세대, 지역에 엇물려 작용하는 모순의 축도 중요하다-의 전개를 한편으로 전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 안에서 기존체제에 안주하거나 ‘권력연합’의 일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변혁에의 의식과 열망을 가지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 및 잠재력을 가진 다양한 세력의 연합으로 상정될 수 있다.
필자의 자료 분석에 의하면 1986년 현재 우리사회의 중산층은 객관적 기준과 주관적 기준을 다 같이 적용해볼 때 통상 화이트칼라로 불리는 신중간계급의 약 70%, 자영업자로 불리는 구중간계급의 약 40%, 블루칼라로 불리는 노동자계급의 20% 정도를 차지하면서 도시가구 전체의 약 35%이고 1981년 이래 약 8% 증가한 것으로 나왔다(韓國社會學, 1987년 여름호 참조). 그렇다면 우리는 사회학적 분석의 일환으로 계급분석을 할 수 있듯이 신중산층 구중산층 노동중산층을 구별하여 각각 특성을 검토하는 것도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이상에서 간략히 언급한 계급과 중산층 및 민중의 개념을 서로 연결시켜 보면 다음과 같은 개념들 간의 관계가 나온다.
<그림1>에 의하면 민중과 중산층이 서로 대립적·배타적 위치에 서야 할 내생적 이유란 아무것도 없다. 또 민중=하류층이라는 묵시적 통념이나 특정계급을 민중의 주축으로 보려는 입장을 다 같이 거부할 수 있는 근거가 발견된다.
물론 <그림1>은 민중의 구성에 관련된 하나의 차원을 보여줄 뿐이다. 이런 모델로 잡히지 않는 다양한 세력이 얼마든지 다른 차원에서 민중연합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연령의 축에서 잡히는 학생 청년 세대가 그 대표적인 보기이다.
또한 <그림1>에는 농민의 범주가 빠져 있는데, 이것은 농민을 계급개념으로 파악할 수 있는지, 또 중산층의 기준을 이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가 아직 불명확하기 때문이지 농민은 민중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은 결코 아니다. 또는 중산층의 양면성도 개념의 수준에서 포착되고 있는 셈이다.

민중귀속과 중산층귀속

그러나 이것은 민중과 중산층에 관한 논의에서 발견된 문제들을 개념적 논리적으로 해결하려 한 것에 불과하고 보다 중요한 것은 경험적 자료 분석에 입각한 해결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관해서도 다양한 분석이 가능하리라 보지만, 이곳에서는 귀속의식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을 시도해보겠다. 즉 누가 자신을 민중으로 보는지, 또는 중산층으로 보는지, 더 나아가 중산층에 속한다는 사람이 민중의식도 갖는 것인지, 또 이런 귀속의식이 인간의 태도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검토해보겠다.
물론 주관적 귀속의식이 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민중이 되고 중산층이 된다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민중이나 중산층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인에 불과하다. 그러나 인간의 실천적 삶에는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객관적 요인을 고려하되 귀속의식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을 시도해보겠다.
분석 자료는 제조업 부문에 종사하는 전국 생산직 노동자와 화이트칼라를 대상으로 하여 1987년 8월과 10월 2차에 걸쳐 집단면접 방식을 통해 수집된 1677명의 표본자료로서 생산직 1058명, 사무직 609명이 산업분야, 규모, 지역, 노조유무 등의 변수에 의해 표본으로 선정되었다. 자세하고 전문적인 논의는 여기서 피하겠으나 (高氷復 교수 화갑기념논총, <사회운동과 사회계급>, 전예원, 1988.에 수록되어 출판되었음) 표본의 대표성은 상당히 믿을 만하다고 할 수 있다. 분석되는 문항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이다.

<문항1>요즈음 ‘중산층’이라는 용어가 우리 사회에 널리 사용되고 있는데, 귀하는 ‘중산층’에 포함 된다고 느끼십니까?
ㅡ(1) 그렇게 느낀다
ㅡ(2)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문항2>원래 우리말에 있던 ‘민중’이라는 말을 학생들은 요즈음 그들 나름대로 널리 사용하는 경 향이 있는데, 귀하는 ‘민중’에 포함된다고 느끼십니까?
ㅡ(1) 그렇게 느낀다
ㅡ(2)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ㅡ(3) 모르겠다
<문항3>‘중산층’과 ‘민중’가운데서 어떤 것이 귀하의 처지나 입장을 보다 알맞게 표현해준다고 느 끼십니까?
ㅡ(1) 둘 다 알맞다
ㅡ(2) ‘중산층’이 ‘민중’보다 알맞다
ㅡ(3) ‘민중’이 ‘중산층’보다 알맞다
ㅡ(4) 둘 다 알맞지 않다.

이 세 가지 문항을 중심으로 하여 분석은 다양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주로 귀속의식의 유형과 사회적 분포 및 특성을 중심으로 간략히 자료를 검토해보겠다.
우선 단순빈도를 보자면, <문항1>에서 중산층에 속한다는 사람은 27.7%, 그렇지 않다는 사람은 72.3%로 나왔다. <문항2>에서 민중에 속한다는 사람은 37.0%, 민중이 아니라는 사람은 29.8%, 모르겠다는 사람은 33.2%로 나왔다. 중산층에 속한다는 사람보다는 민중에 속한다는 사람이 약 10% 더 많은 셈이다.
그러나 직종별로 보면 생산직과 사무직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음이 드러난다. 즉 중산층이건 민중이건 간에 귀속의식이 사무직 화이트칼라에서 단연 높게 나타난 것이다.
이런 단순빈도만을 가지고도 우리는 생산직 노동자보다는 사무직 화이트칼라가 민중이나 중산층의 준거틀을 가지고 자기 정체성을 발전시켜 가는 데 보다 자유롭고 적극적임을 알 수 있다.
또 중산층의식이 생산직보다 사무직에서 더 높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고 통념에 부합되는 것이나, 민중 의식도 이들에게서 훨씬 높아 제조업부문 화이트칼라의 약 절반 정도가 명백히 민중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표 1> 직종별 중산층 귀속의식

귀속의식 직종

생 산 직

사 무 직

중 산 층 이 다

중 산 층 아 니 다

215(21.2)

801(78.8)

232(38.8)

366(61.2)

477(27.7)

1167(72.3)

1016(100.0)

598(100.0)

1614(100.0)

x²=57.581 df=1 p<0.000

<표 2> 직종별 민중귀속의식

귀속의식 직종

생 산 직

사 무 직

민 중 이 다

민 중 아 니 다

모 르 겠 다

316(31.3)

302(29.9)

392(38.8)

278(46.8)

175(29.5)

141(23.7)

594(37.0)

477(29.8)

553(33.2)

1010(100.0)

594(100.0)

1604(100.0)

x²=49.912 df=2 p<0.000

또한 민중귀속 여부를 묻는 <문항2>에서 모르겠다는 응답의 비율이 사무직보다 생산직에서 훨씬 많다는 점도 주목을 끈다. 이런 사람은 대체로 나이가 많을수록, 또 교육수준이 낮을수록 현저히 증가하는 경향이 보인다. 이 경향은 생산직과 사무직에서 공통된 것이다. 그러나 생산직에서 특히 현저하여 40세 이상 노동자의 43.5%, 중졸 이하 노동자의 50.9%가 이에 해당한다.
반대로 자신이 민중이나 중산층에 속한다는 응답은 생산직과 사무직에서 다 같이 연령이 낮을수록, 또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현저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이것은 사회경제적인 조건이 곧장 민중적 정체성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오히려 우리는 여기서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상징조작을 꿰뚫어보는 능력이 증가하고 따라서 민중의 상징을 길러내 자기해석의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커지기 때문에 생산직보다는 사무직에서, 특히 젊고 교육수준이 높은 화이트칼라에서 민중귀속의식이 높아진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20대 사무직의 52.0%, 대졸이상 사무직의 53.6%가 이에 속한다).
자기정체성이나 귀속의식은 주관적 현상에 불과한 것으로서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나 사실은 그 반대이다. 왜냐하면 생동하는 현실은 항상 실천적인 것이며 인간의 의식이나 태도 또는 행동방식은 인간의 자기정체성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 차원을 제대로 잡지 못한 객관적 분석은 굳어버린 범주에 매달려 살아 있는 현실을 보지 못한다는 점에서 아직 충분히 구체화되었다고 할 수 없다.
이곳에서 자세히 소개할 수는 없으나 예컨대 <문항2>에서 민중적 정체감을 갖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변화에의 욕구를 강하게 지니고 있으며 사회변혁을 지향하는 운동들을 강하게 지지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나고 있다.

4가지 귀속유형에 대한 심층 분석

그러나 필자가 진정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제는 민중구속과 중산층귀속을 각각 독립적으로 살펴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앞에 제시함 <문항 1,2,3>을 서로 교차시킴으로써 복합적인 분석을 시도해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문항1>과 <문항2>를 교차시키면 6개의 조합이 나오는데, 이것을 다시 <문항3>과 교차시키면 24개의 조합이 도출된다.
여기서 <문항3>을 검증변수로 삼아 논리적으로 모순되는 조합을 제거시키고 유사한 조합을 결합시키면 다음과 같은 4가지의 귀속유형이 검증과정을 통해 나온다.
(1) 순수한 중산층귀속형 : 민중에는 속하지 않으면서 중산층에만 속한다는 유형
(2) 순수한 민중귀속형 : 중산층에는 속하지 않으면서 민중에만 속한다는 유형
(3) 쌍방귀속형 : 중산층이면서 동시에 민중에 속한다는 유형
(4) 쌍방부정형 : 중산층도 아니고 민중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보는 유형
우선 각 유형의 직종별 분포를 보면 <표3>과 같다.

귀속의식 직종

생 산 직

사 무 직

중 산 층 귀 속

민 중 귀 속

쌍 방 귀 속

쌍 방 부 정

147(19.6)

258(34.4)

92(12.3)

253(33.7)

113(22.4)

162(32.1)

121(24.0)

108(21.4)

260(20.7)

420(33.5)

213(17.0)

361(28.8)

750(100.0)

504(99.9)

1254(100.0)


무응답과 논리적으로 명백히 모순되는 표본은 제외되었음 x²=41.934 df=3 p<0.000

여기서 보듯이 중산층귀속은 20.7%, 민중귀속은 33.5%로서 후자가 더 많다. 또한 쌍방귀속은 17.0%, 쌍방부정은 28.8%로서 역시 후자가 더 많다. 직종별로 보면 중산층귀속은 사무직에, 민중귀속은 생산직에 더 많으며, 쌍방귀속은 사무직에서 단연 더 많고 쌍방부정은 생산직에서 훨씬 더 많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앞서 본 <표1>과 <표2>에 의하면 중산층귀속과 민중귀속이 다 같이 사무직에서 많은 것으로 나왔는데, 여기서는 쌍방귀속을 독립범주화함으로써 앞의 결과와는 달리 중산층귀속은 사무직에서, 민중귀속은 생산직에서 더 많은 것으로 조정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표2>에서 스스로를 민중을 본 사무직의 상당부분이 <표3>에서는 쌍방귀속으로 옮겨왔기 때문이다.
쌍방귀속은 중산층과 민중의 준거틀을 다 같이 수용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넓은 의미의 중산층 귀속집단은 결국 37.7%(473명)가 되는 셈이다. 이중 45%에 해당 하는 213명은 자신을 중산층이면서 민중이라고 보는 쌍방귀속 유형에 속한다. 이 비율은 사무직에서 더욱 높다. 즉 넓은 의미의 중산층 귀속집단(234명, 사무직 전체의 46.4%) 가운데서 52%에 해당하는 사무직은 자신을 중산층이면서도 민중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 중산층이면서 민중에 속한다는 집단과 민중은 아니면서 중산층에만 속한다는 집단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관심 있게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표3>에 의하면 넓은 의미의 민중 귀속집단은 50.5%(633명)로서, 그 가운데 34%인 213명은 자신을 민중이자 중산층으로 본다. 이 비율도 사무직에서 단연 높아 민중귀속집단(283명, 사무직 전체의 56.1%)의 43%에 해당하는 사무직은 자신을 민중이자 중산층이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이들 민중이면서 중산층이라고 보는 집단과 중산층은 아니면서 민중에만 속한다고 보는 집단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가 또한 흥미 있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몇 가지 잠정적 결론

이에 관해 자세한 분석을 소개할 수 없음을 양해해주기 바란다. 다만 분석을 통해 얻은 몇 가지 잠정적 결론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4가지 귀속유형에 관해 심층 분석을 해본 결과 순수한 중산층귀속과 민중귀속은 현저히 대조적인 사회적 기반과 성격을 가지고 있음이 드러났다. 예컨대 연령 면에서 중산층귀속은 연령이 높을수록 뚜렷이 증가하는 데 반해, 민중귀속은 연령이 낮을수록 증가한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단순 분석의 결과와는 다른 것이다.
둘째, 우리사회에서 수많은 조사를 통해 확인된 점은 연령이 낮고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변혁에의 욕구가 강하다는 것인데, 이런 조건이 가장 분명히 드러나는 귀속유형은 쌍방귀속으로 밝혀졌다. 다시 말해 오직 이 유형만이 연령이 낮을수록,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일관되게 현저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 이념과 태도, 행동방식의 면에 있어서도 중산층귀속과 민중귀속은 매우 대조적임이 분명하다. 즉 중산층에만 속한다는 집단은 한 마디로 매우 보수적인데 반해, 민중에만 속한다는 집단은 변혁에의 욕구가 매우 왕성한 것이다.
넷째, 자신을 중산층이면서 민중이라고 보는 집단은 근본적으로 민중집단에 가까운 이념과 태도를 가지고 있으나 급진적이라기보다는 개혁지향적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보수적인 순수 중산층귀속 집단과는 모든 면에서 현저히 구별되는 특징을 갖는다.
다섯째, 정치사회학에서 종종 다루고 검증하고자 하는 보수주의-개혁주의-급진주의의 척도가 우리사회에서는 중산층귀속-쌍방귀속-민중귀속의 구분과 어느 정도 일치하지 않을까 하는 심증을 얻게 되었다.
여섯째, 쌍방부정의 유형은 이념과 태도의 면에서 일관성을 발견하기가 매우 힘들다. 예컨대 빈부격차에 대해서는 급진적인 태도를 보이다가도 노동운동에 대해서는 중산층귀속보다 더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는 등 모순적인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

개혁적 중산층의 새로운 개념화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동안 민주화를 포함하여 사회변혁의 중심세력이 민중인가 아니면 중산층인가를 되물어 왔다. 그러나 양자택일의 이 질문을 완전히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수정되어야 한다는 점이 이 글에서 어느 정도 밝혀진 셈이다.
1988년 현재 우리사회에서 중산층에 속한다고 느끼는 제조업부문 종사자의 약 절반은 민중적 정체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들은 개혁지향적 성격이 강하지만 그렇지 못한 나머지 절반은 보수적이라는 점을 깊게 음미해 보아야 할 것이다. 더구나 앞으로 중산층의 규모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할 때, 이들의 개혁지향적 자기 정체성을 신장시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기울여야 한다고 본다.
이런 의미에서 필자는 민중적 의식을 가지고 있는 중산층의 자기정체성을 적절히 표현해주는 개념화가 우선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제안은 ‘중민의식(中民意識)’ 또는 ‘중민적(中民的) 정체성’으로 표현하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중민(中民)이란 문자 그대로 중산층이면서도 민중이란 뜻도 있지만 민중의 중심이라는 뜻도 있다. 이것은 순수한 의미의 중산층귀속과도 다르고 아직 중산층의 상태에 오지 못한, 그러기에 급진적인 지향이 강한 민중귀속과도 다른 것이다. 그러면서도 근본적으로 민중과 더불어 그 가운데서 변혁을 추진해가는 세력이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이 중민의식(中民意識)을 가진 집단은 우리사회에서 연령이 낮고 학력이 높은 도시출신의 사무직 화이트칼라에서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반해 순수한 중산층귀속의식은 나이가 많은 남성들에게 많이 발견된다. 생산직에서는 학력이 낮을수록, 사무직에서는 학력이 높을수록 증가한다는 것이 대조적이다. 또 생산직보다는 사무직에서 다소 많은 셈이다. 순수한 민중귀속의식은 농촌출신의 젊은 남녀 층에서 많이 발견된다. 학력은 고졸(퇴)에서 가장 많고 생산직에서 다소 많은 셈이다. 끝으로 중산층도 아니고 민중도 아니라는 집단, 따라서 이 면에서는 아직 자기정체성을 갖고 있지 못한 사람은 교육수준이 낮고 나이가 많은 생산직 남성에게서 많이 발견된다.
이렇게 볼 때 4가지 귀속유형 가운데서 중민적(中民的) 정체성을 가진 집단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변혁지향세력의 사회적 기반은 그만큼 확대되고 변혁운동의 중심이 튼튼해진다고 할 수 있다.

中民的 正性을 키우자

이 글은 제조업부문에 종사하는 생산직 노동자와 화이트칼라를 대상으로 한 전국표본조사에 근거한 것임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전체 화이트칼라의 약 40% 정도는 전문직과 관리직으로 구성되며 이들에 대한 조사결과는 아직 없다. 또 사무직이라 하더라도 제조업부문 이외의 국가기관, 서비스부문 등의 화이트칼라도 아직 조사된 것이 없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며 특히 우리사회에서 여론형성 등에 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전문자유직의 귀속의식에 대해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중산층 가운데서도 대체로 중하층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화이트칼라들은-이 연구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이 포함되었다-상당히 뚜렷한 중민적(中民的)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지나친 급진주의는 경계하지만, 왕성한 변혁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밝혀졌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 위에 있다고 볼 수 있는 중산층, 특히 교육수준이 높고 사회적 양심과 비판의식을 대변한다고 하는 지식인 문화인 종교인, 기타 전문직 종사자들이 자기정체성을 어떻게 발전시켜갈 것인가에 있다. 보수적인 중산층귀속의식으로 끝날 것인가, 아니면 그 굴레를 벗어나 중민적(中民的) 정체성을 획득할 것인가가 연구를 요하는 쟁점으로 남아 있다.
좀 더 실천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요즈음 사회운동이나 일부 정당 등에서 중산층의 向背에 나름대로 관심을 가지면서 이들을 변혁주체로 여하히 육성하고 포용할 것인가에 관해 활발히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을 본다. 이것은 고무적인 추세로서, 하나의 방안은 중민의식(中民意識)과 중민적(中民的) 정체성을 고양시키는 것이다. 좀 더 길게 본다면 중민화(中民化), 중민주의(中民主義), 중민(中民)노선 같은 것을 개발하고 체계화시켜 중민(中民)집단이 변혁지향적 민중운동의 중심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이런 자세에서 변혁지향적 중산층과 노동자 농민 학생 청년 등을 수평적 연대로 묶고 변혁의 좌표와 방법을 개발해가야 하며, 보다 급진적인 민중 집단과 개혁지향성이 강한 중민(中民)집단을 어떤 이론과 실천으로 결합시켜 민중운동 안에 포용할 것인가를 예의 검토해야만 한다.
이것이 오늘의 정치현실에 너무 좌절하지 않고 미래의 가능성을 키워가는 길이라고 믿는다.

 

-신동아(1988년 4월호, 한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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